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트럼프 관세문제가 터졌을 때 이번엔 진짜 글로벌 무역이 쪼그라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조업 현장에 있다 보니 체감이 더 컸습니다. 모든 경영자들은 "관세 어떻게 됩니까" 소리가 먼저 나왔고, 회사 내부에서도 공급처 다각화 자료가 수시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만큼 아니었습니다. 100년 만에 최대 규모라는 관세 충격 속에서도 무역은 세계 경제 성장률을 앞질렀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현장에서 느낀 것들과 함께 정리해 봅니다.
지정학적 거리가 벌어질수록 물리적 거리는 늘어난다
제가 처음 "지정학적 거리(Geopolitical Distance)"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는 낯설었습니다. 먼가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느낌이 들었거든요. 여기서 지정학적 거리란 두 국가가 외교·안보·가치관 면에서 얼마나 가깝고 먼지를 수치화한 개념입니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가 이를 0에서 10까지의 척도로 정량화했는데, 미국이 0, 일본이 1, 러시아가 9, 이란이 10에 가깝습니다. 이 수치가 먼 국가끼리의 거래는 계속 줄고 있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핵심 발견 중 하나입니다(출처: McKinsey Global Institute).
흥미로운 건 그 반대 방향으로 물리적 거리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철강업에 종사하면서 직접 경험해 보니 이게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미국이 중국 대신 인도나 베트남, 멕시코에서 물건을 사 오면서 실제 배송 거리는 길어집니다. 가치관이 맞는 파트너를 찾다 보니 효율보다 안전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미-중 간 직접 무역은 관세 전쟁과 규제 강화로 약 30% 감소했고, 미국은 그 빈자리의 3분의 2를 다른 공급처로 채운 것으로 설명이 되지요.
여기서 탈-동조화(Decoupling)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탈-동조화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두 나라가 의도적으로 상호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탈-동조화가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어요. 실제로 중국은 완제품 수출이 막히자 칩, 배터리, 부품 같은 중간재를 인도나 아세안(ASEAN) 국가에 공급하고, 그 나라들이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파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스마트폰 자체는 못 팔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은 팔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거래처와 얘기해 봤는데, 이런 우회 구조가 현장에서 이미 꽤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2025년 글로벌 무역 흐름의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중 직접 무역 약 30% 감소, 빈자리의 2/3는 인도·아세안·멕시코가 대체
-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국가 간 교역 확대, 물리적 거리는 역으로 증가
- 중국의 소비재 수출 가격 평균 8% 인하로 신흥 시장 개척 가속
- 공급망 회복력(Resilience) 확보가 단순 비용 절감보다 우선순위로 부상
여기서 공급망 회복력(Supply Chain Resilience)이란 특정 국가나 공급처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충격이 왔을 때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능력을 말하는 전문용어지요. 저희 회사에서도 올해 들어 이 단어가 회의에서 자주 나오는데 "혹시 이 공급처가 막히면 어디서 대체할 수 있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지요.
글로벌 무역의 새주역 AI
제가 이번 보고서를 보고 가장 놀란 대목이 여기였습니다. AI 관련 제품이 2025년 전체 무역 성장액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는 수치입니다. 반도체와 데이터 센터 장비 수출이 전년 대비 40% 가까이 급증했고, 이것이 무역 전체 성장을 끌어올린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네요.
데이터 센터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서버 몇 대 사 오는 게 아닙니다. 반도체, 냉각 시스템, 터빈, 전력 설비까지 전 세계 공급망이 총동원됩니다. 한국과 대만은 이 구조에서 핵심 허브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도 그 뒤를 빠르게 따라붙고 있습니다. 제 주변 반도체 장비 쪽 지인들은 요즘 일이 너무 많다고 할 정도입니다. 체감 온도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AI 관련 핵심 장비의 수출입이 제한되면서 이 성장 흐름에서 일부 배제된 상태입니다. 대신 중국은 "공장을 위한 공장(Factory for the Factories)"이라는 역할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쉽게 말해 최종 소비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제조업을 지원하는 산업용 중간재와 자본재 수출에 집중하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나 아세안에서 전자제품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산업 기계와 칩을 중국이 공급하는 구조인데요. 실제로 이 중간재·자본재 부문에서만 무려 1,760억 달러 규모의 교역 증가가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간재(Intermediate Goods)란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팔리는 완제품이 아니라, 다른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원료나 부품을 의미합니다. 저도 현장에서 이 흐름을 체감하는데, 예전엔 완성된 전자제품이 직접 들어왔다면 이제는 부품 단위로 들어와서 현지에서 조립되는 방식이 확연히 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산업이 다 성장한 건 아닙니다. 섬유나 기초 제조업 같은 분야는 미-중 간 무역 감소의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 성장이 크게 둔화됐고, 원자재 자원 부문도 가격 변동성 때문에 혼재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솔직히 이 부분에서 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AI와 반도체는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전통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양극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철강 제조업에 종사하는 우리의 모습이 조금을 밝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는 관세로 무역 흐름을 끊으려 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무역의 경로가 더 복잡하게 재구성하였습니다. 관세가 공급망을 파괴한 게 아니라 공급망의 기하학을 바꿨습니다. 이것을 트럼프 본인이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장에 있는 저 같은 엔지니어에겐 예상치 못한 결과이지요.
결국 지금의 글로벌 무역은 단절이 아닌 재구성의 과정을 겪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나라끼리 묶이고, AI가 새 성장 엔진이 되고, 중국은 공급망 중간에 자리를 잡는 방식으로 구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제조업에 있는 분들이라면 이 흐름을 단순히 뉴스로 소비하지 않고, 우리 회사의 공급처와 판로가 어디에 있는지 한 번쯤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 https://www.mckinsey.com/mgi/our-research/geopolitics-and-the-geometry-of-global-trade-2026-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