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 철강산업 위기 원인: 중국산 저가 수입만의 문제는 아님

by 하이파이브 2026. 3. 3.

 

저가의 중국산 수입이 증가한다는 이슈는 몇 년째 계속 듣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토론하면서 원가를 줄이는 방안도 생각해 보고, 생산성을 올리는 아이디어도 도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철소에서 근무하면서도 한동안 이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판매량이 줄어드는 건 중국산 저가 철강 때문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요. 내부 보고 자료에는 중국산 수입량이 2020년 600만 톤에서 2024년 900만 톤으로 늘었다는 데이터가 계속 나왔고, 어느 순간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철강 전문가의 칼럼을 접하면서 제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히 중국산 철강재 때문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중국 탓만 하면 면책되는 구조

한국 철강산업의 위기를 중국산 저가 철강재 탓으로만 돌리는 시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중국산 수입재가 국내 시장을 압박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프레임을 잡으면 정작 우리 산업을 책임져온 선도 기업과 정부는 순간적으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건, 우리 철강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선도 기업 중심의 왜곡된 경쟁 구도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왜곡된 경쟁 구도란 소수의 대형 철강사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중소 업체들이 제대로 된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최근 글로벌 6개 철강사의 경영 성과를 비교한 리포트를 보면, 포스코나 현대제철 같은 우리 선도 기업들의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한눈에 드러난다고 합니다. 이는, 기술개발과 선도적인 제품의 비율 등 경쟁사에 대비해서 수준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 업계에 속한 엔지니어로써 당연한 상황으로 받아들였지 얼마나 뼈저린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산업 정책입니다. 고도 성장기에는 선도 기업 중심 전략이 불가피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도 경쟁 구도를 다변화하지 못했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선도 기업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가 무너지는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됐습니다. 제가 15전쯤 기억하는 철강업계는 중국을 포함한 여러나라로 수출하면서 품질과 생산에서 호황을 누렸습니다. 중국 자동차사가 워낙 까다워서서 품질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고객사 클레임 대응에 무척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고, 우리는 이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뒤늦은 무역 방어

중국산 수입 증가는 단순히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글로벌 철강산업 전체가 공급 과잉(supply glut)에 빠져 있습니다. 공급 과잉이란 시장 수요보다 생산 능력이 훨씬 많아 재고가 쌓이고 가격이 하락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OECD에 따르면 2025년 말 전 세계 조강 생산 능력은 25억 5,000만 톤에 이르며, 초과 설비 규모만 6억 8,000만 톤에 달합니다. 인도는 2026년에만 1,140만 톤의 조강 생산을 추가할 계획이고,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공격적으로 설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은 자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 관세(anti-dumping tariff)와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반덤핑 관세란 수출국이 자국 내 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수출할 때 그 차액만큼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한국 정부도 지난 2월 중국과 일본산 열연강판에 최대 3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가격 약속(price undertaking)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가격 약속이란 수출 기업이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고 물량을 줄이겠다고 약속하면 관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입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너무 늦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건, 이미 몇 년 전부터 수입재 증가 추세가 뚜렷했는데도 정부는 선제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미국은 2025년 4월 철강 관세를 50%로 두 배 인상하며 자국 산업을 보호했고, 유럽연합도 할당량 초과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렸습니다. 우리도 이런 움직임을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었지만, 실제 조치는 위기가 심화된 뒤에야 나왔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이런 정책들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관세를 올려도 국내 제조사들이 수입재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과 품질을 제시하지 못하면 결국 시장은 다시 흔들릴 겁니다. 더구나 공구강 같은 일부 품목은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아 관세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는 수입 열연을 원료로 쓰는 강관·자동차·조선 업체들의 원가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정부의 무역 방어 조치는 분명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은 어렵습니다.

한국 철강산업이 진짜 살아남으려면 우리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선도 기업들은 고급강(high-grade steel) 생산 기술을 확보하고,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새로운 판매 시장을 선제적으로 개척해야 합니다. 고급강이란 자동차·조선·항공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쓰이는 고강도·고내구성 철강재를 말합니다. 정부는 단순히 수입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친환경 제강 기술 투자와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산업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중국 탓만 하고 있기엔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냉혹한 자기 진단과 과감한 혁신입니다.

 

중국철강수입
중국철강 수입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nVImoARsec
https://www.oecd.org/industry/ind/steel.htm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