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제가 일하는 철강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배터리 무게가 줄어들면 차체 강도를 보완하기 위해 고강도강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도 혜택을 받을 거라는 단순한 계산이었죠.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들여다보면서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배터리 교체가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혁신이었고, 철강 산업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철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로써 에너지변화, 산업군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입니다.
리튬금속음극이 바꾸는 배터리 패러다임
일반적으로 배터리 용량을 늘리려면 음극재를 개선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입니다. 기존 흑연 음극은 여섯 개의 탄소 원자가 리튬 이온 하나를 저장하는 구조인데, 실리콘으로 바꾸면 한 개의 실리콘 원자가 리튬 이온 네 개를 저장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 24배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리콘은 충전 과정에서 부피가 팽창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부피 팽창이란 리튬 이온이 실리콘 내부로 들어가면서 실리콘 구조 자체가 물리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흑연에 실리콘을 5% 정도만 섞어 사용하고, 이렇게 해도 배터리 용량은 10% 정도만 증가합니다.
리튬금속음극은 이런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기술입니다. 저장 용기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구조인데, 리튬 박막 위에 리튬 이온이 직접 증착되는 방식입니다. 양극에서 나온 리튬 이온과 전자가 만나 리튬 금속이 되어 박막 표면에 쌓이는 거죠. 쉽게 말해 신용카드처럼 얇은 형태로 배터리를 만들 수 있고, 부피 대비 에너지 밀도가 획기적으로 증가합니다.
충방전 속도도 빠릅니다. 흑연이나 실리콘처럼 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나올 필요 없이 박막 표면에 앉았다 바로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튬의 반응성이 너무 강해서 액체 전해질과 만나면 가스 발생, 덴드라이트 현상 같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여기서 덴드라이트란 리튬이 나뭇가지처럼 불규칙하게 성장하는 현상으로, 분리막을 뚫고 나가면 단락이 발생해 폭발 위험이 있습니다.
황화물전해질과 접촉 불량의 딜레마
전고체 배터리가 아직 빠르게 상용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는 이온전도성 문제입니다. 이온전도성이란 전해질 내부에서 리튬 이온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고체 전해질은 액체보다 이온 이동 속도가 느린 경우가 많고 특히 저온에서 취약합니다. 황화물 전해질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황 분자는 구조가 커서 분자 사이 공간이 넓어지고, 많은 이온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이온 도핑을 통해 첨가제를 섞으면 이온 농도 차이가 증가해 이동 속도도 빨라집니다. 결정질을 비정질로 만들어 원자 배열을 무작위화하면 이온 이동 통로가 다양해져 샛길이 많아지는 효과도 있죠.
하지만 제가 철강 현장에서 접합 문제를 다뤄본 경험으로 보면, 고체와 고체 사이의 접촉 불량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전해질과 음극 사이에 미세한 틈이 발생하면 그 틈으로는 리튬 이온이 통과하지 못합니다. 붙어 있는 곳으로만 이온이 몰려 과잉 반응이 일어나고 배터리가 비틀어질 수 있습니다. 빈 공간에는 수분이나 공기가 차서 리튬과 반응해 비활성막이 생기고, 해당 부분은 완전히 괴사됩니다.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요오드 이온을 활용한 특수 접착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전극과 전해질 사이의 공극을 자동으로 메우는 방식으로, 리튬 이온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죠. 또한 고분자 골격 구조를 통한 유연 골격 기술도 주목받고 있는데, 배터리를 비틀거나 굽히고 접어도 손상되지 않으며 더 많은 리튬 이온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퀀텀스케이프와 도요타의 기술 선택
퀀텀스케이프는 2010년 스탠퍼드에서 분사한 업체로, 시가총액 7조 원 규모의 전고체 배터리 전문 기업입니다. 폭스바겐이 26%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카타르 투자 펀드와 빌 게이츠도 투자했습니다. 아직 매출은 없지만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퀀텀스케이프의 첫 번째 혁신은 전해질로 비정질 세라믹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비정질이란 원자 배열이 불규칙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도자기처럼 구멍이 많아 이온 통로가 풍부하고 유연해서 잘 깨지지 않습니다. 가장 큰 혁신은 음극을 아예 없앤 것입니다. 리튬 금속 박막 대신 구리판만 설치하고, 양극에서 온 리튬 이온과 전자가 구리판에서 만나 리튬 금속이 되어 증착됩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 부피당 에너지 밀도가 극대화됩니다
- 충방전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 리튬 금속이 상주하면서 일으키는 부작용이 최소화됩니다
- 음극이 없어 제조 과정이 단순하고 배터리 소형화가 가능합니다
두 번째 혁신은 전해질을 한 겹으로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세라믹을 여러 층으로 쌓는데, 퀀텀스케이프는 특별한 첨가물(불소, 나노 입자 산화물 등)을 섞어 비정질 세라믹의 강도를 극대화했습니다. 한 겹이면 층간 균일성 문제가 사라지고 생산성이 대폭 향상됩니다. 리튬 이온도 한 겹만 통과하면 되므로 이온전도성이 훨씬 좋아지는 거죠.
하지만 구리판에 증착된 리튬 중 일부는 방전 시 나가지 않고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게으른 리튬 이온이 구리판에 계속 붙어 있으면 배터리 용량이 점차 감소하고 남은 리튬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도요타도 이 방식을 시도했다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황화물 기반으로 전환한 이력이 있습니다.
도요타는 황화물 전해질에 리튬 금속을 사용하되 흑연을 섞어 리튬의 반응성을 통제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도요타의 핵심은 조기 상용화입니다. 전해질과 음극 사이에 이중 방막 코팅을 하고, 셀 하우징 특허를 확보해 리튬 음극의 팽창과 수축에 맞춰 황화물 전해질의 마찰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2027년 도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차를 출시하면 일본의 여러 업체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초고강도강과 철강 산업의 생존 전략
저는 철강업체에서 근무하면서 세상의 에너지 변화와 철을 사용하는 모든 산업군의 변화를 관심있게 지켜봐야 합니다.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 철강이 가야 할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동차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데, 제가 일하는 제철소의 절반이 자동차 소재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전기차는 배터리 부피를 감소시키면서 무게 감소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배터리 무게가 차량의 30~4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고강도강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초고강도강이란 인장강도가 1,000MPa 이상인 강재를 의미하는데, 기존 강재보다 얇게 만들어도 같은 강도를 유지할 수 있어 경량화에 유리합니다.
일반적으로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철강 산업에 긍정적일 거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철강은 단순한 보호재가 아닌 구조재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철을 극한으로 무게를 감소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알루미늄과의 경쟁이 심화될 것입니다.
현재 배터리 팩은 알루미늄, 고강도강, 복합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급재들의 양적인 성장보다는 초고강도 초경량강재를 개발하고 전기차 전용의 강종을 확대해야 합니다. 포스코와 같은 철강회사는 더 이상 철만 생산하지 않습니다. 배터리 사업에도 진출해 리튬, 니켈, 양극재 생산체제도 구축하여 산업의 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솔리드파워는 2011년 콜로라도 대학 출신 교수 3명이 창업한 미국 기업으로, 그중 한 명은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세희 박사입니다. 솔리드파워는 양극제, 황화물 전해질, 리튬 금속 음극을 파우치에 담아 쌓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는 현재 한국과 중국의 생산 라인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K배터리 업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파우칭 기술에 강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파우치 기술이란 배터리 셀을 금속 캔 대신 얇은 알루미늄 라미네이트 필름 파우치에 담아서 밀봉하는 제조 방식을 말합니다. K배터리는 스마트폰 배터리부터 전기차 배터리까지 모두 파우치형으로 생산해 왔습니다. 솔리드파워가 파우치를 쌓는 방식으로 문제없이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면, 한국은 기존 생산 시설을 활용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배터리 업계의 현실은 엄중합니다. 에코프로의 실적을 보면 적자가 심각하고, 총자산 회전율이 39%에 불과합니다. 투자한 자산의 절반도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건 생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중국의 공급 과잉이 원인이며, 2027년까지 중국의 생산 캐파는 자국 수요의 4배로 증가할 것입니다.
전고체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한국에 희망이 있을까요? 현재 생산 라인에서 전고체에 활용 가능한 것은 양극제뿐입니다. 분리막은 사라지고 음극제도 다른 것으로 대체됩니다. 양극재가 밸류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불과합니다. 에코프로는 전고체 밸류체인을 구축 중이지만, 아직 이런 밸류체인의 기대감이 주가의 증감에 영향을 주는 정도입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서도 핵심입니다. 로봇은 고강도 노동 작업장을 타깃으로 하며, 배터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전기차와 달리 탑재 공간에 한계가 있어 부피와 무게 대비 고용량 에너지 밀도를 가진 배터리가 필요합니다. 삼성 SDI가 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현실화하면 전기차보다 로봇에 더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습니다.
저는 철강 현장에서 일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이미 연구 단계에서 상용화 단계까지 와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습니다. 오래된 설비들을 교체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기술력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전고체 배터리의 각축 속에서 앞으로 3~4년이 분수령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기술도 지속하며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한 과소평가되어서도 안 됨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