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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익스프레스

by 하이파이브 2025. 1. 31.

1. 스스로 성공공식이 된 프랭클린

  프랭클린의 자취를 찾아가면서 작가 자신의 삶과 프랭클린의 삶을 비교해 보고 상상해 보는 책입니다. 쓸모를 중요시했던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 쓸모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소크라테스법 대화법을 좋아했고, 어린 나이에 누구보다도 자신을 겸손한 말을 하는 사람으로 성숙했습니다.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라는 말보다는 '내 생각엔' 등의 표현방법으로 대화상대를 밀어내지 않고 자기 의견을 드러냈습니다. 벤이 자랐던 도시는 보스턴이었으며, 보스턴은 상인과 무역상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청교도 도시였습니다. 프랭클린은 어릴 적부터 좋은 학생이었으나, 아버지의 의지로 10세까지만 정규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릴 적 프랭클린은 책을 사랑하는 공동체에서 태어났고, 보스턴 도서관은 보스턴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는 책을 읽고 쓰고 사고팔고 빌리고 선물하고 사랑했습니다. 벤은 경험과 실험의 애호가였으며, 수영을 잘했습니다. 보스턴에 있는 동안에도 늘 바다 너머의 세상을 탐험하고 싶었습니다. 아홉 살 많은 형 제임스가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도제로 일을 했고, 도제는 당시에 굉장히 구속력이 있는 제도로 급료 없이 멘토와 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와 벤은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벤은 열두 살 때 두 편의 시를 썼고, 그것을 팔기도 했습니다. 시인의 꿈을 잠시 꾸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형 제임스가 신문 <뉴잉글랜드커런트>를 창간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사이런스 두굿이라는 과부가면을 쓰고 그는 여러 해결책과 문제들을 신문에 기재하게 되었습니다. 변장은 벤에게 평생의 습관이기도 했습니다. 필라델피아로 옮겨간 벤은 그곳에서 진정한 가면을 썼고, 자신의 재능과 꿈을 펼쳐봅니다. 그곳에서 작가는 체스트넛 스트리트를 따라서 부두로 걸었습니다. 벤이 지금 변한 이곳을 다시 온다면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2.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간 프랭클린

 프랭클린이 스무살 때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후 오늘까지 약 300년이 흘렀습니다. 벤은 결과주의자였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의 도덕성이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였습니다. 필라델피아는 프랭클린에게 딱 맞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총독 키스의 거짓된 신용으로 영국까지도 가야 했던 어린 벤은 그 경험을 어쩌면 슬기롭게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경험으로 소화했습니다. 영국에 도착해서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바로 필라델피아로 돌아가는 배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런던은 그에게 위험했지만 매혹적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커피하우스에서는 지성을 배양하는 장소였습니다. 프랭클린은 이런 런던의 커피하우스를 좋아했습니다. 이곳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값싼 커피를 마시며 새로운 발상을 탄생시켰습니다. 런던에서 필라델피아로 돌아오는 힘든 여정은 벤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 동안 벤은 과학과 심리학, 도덕에 대해서 사색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훗날 벤은 정중함을 보편적 가치로 묘사하는데 벤에게 정중함은 쓸모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좋은 것이 됩니다.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온 벤 플랭클린은 그 여행을 통해 삶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벤은 그 후 늑막염을 겪으면서 죽음의 고난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이 세상은 꽤 괜찮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벤은 실수에 대해서 자서전에 다섯 개의 오자를 언급했습니다. 재정적인 것, 지적인 것, 사적인 것 등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는 그 오자 하나하나를 전부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키모의 인쇄소에서 일을 하던 벤은 키머와의 관계가 극도록 나빠지면서 인쇄소를 떠나게 됩니다. 돈도 직업도 없었던 그의 상태는 또 다른 기적이 필요했고, 이런 기적은 벤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3. 실용주의자 프랭클린이  만든 것

 프랭클린은 대화에 대해 일침을 가합니다. "과도한 수다로 다른사람의 몫을 빼앗는 것"을 가장 큰 실수라고 했습니다. 즉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은 듣기를 잘하는 것입니다. 프랭클린은 어떤 주제의 의견을 물으면 보통 상대에게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상대를 소외시키기보다는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답하곤 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관계가 논쟁에게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프렝클린은 준토라고 하는 클럽을 만들고 회원을 소집합니다. 그리고는 존재의 이유를 고심하고 목표를 세워 클럽을 운영했습니다. 그 클럽은 철학과 도덕, 정치를 배울 수 있는 지역 최고의 학교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임은 따분한 토론모임이 아니었으면 항상 경쾌함이 흘러넘쳤습니다. 논쟁을 기대하거나 승리를 원하는 대신에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를 나눠야 했습니다. 즉, 그 모임은 쓸모 있는 단체였습니다. 프랭클린에게 습관은 벤이 그럴 수 있도록 돕는 접착제였습니다. 책 읽기의 습관이 그를 만들었고, 그는 의도가 아닌 행동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어느 때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습관을 들여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습니다. 자기만의 열세 가지 미덕 목록을 작성했으며 꾸준함으로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벤은 끊임없이 일했으며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설득하고자 프랑스에 가서도 그는 사랑받았습니다. 조롱하는 자가 있으면 늘 유머로 맞섰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했고,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사용했고 늘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아직도 미국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남아있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열망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한 위인이었습니다.